바디장, 그 이름의 비밀
처음 교회 온 사람들은 모든 것이 낯설다. 예배 형식부터 시작해서 교회에서만 쓰는 독특한 명칭들 (jargon)이 있다. 열심히 익혀야 하는데... '바디장'이 그 첫 관문이었다. 분명 여름 수련회가 있긴 있을텐데, 이번에는 바디장 연합 수련회란다. 머리를 써본 결과 틀림없이 각 기관장 연합 수련회일 듯 했다. 바디의 장이라... 그런데 그 기관장 수련회를 400명 넘게 간다기에 좀 의아하긴 했다. 그정도 규모면 거의 사랑의 교회 급인것 같은데... 기관장이 그렇게 많았던가? 전 교인의 기관장화가 아닌바에야,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숨어있는걸까? 내가 모르는 예배의 공간과 시간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바울, 디모데, 장년의 머릿글자 조합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 최근이었다. 이런 고민은 내 아내도 똑같이 했다. 둘 다 참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떻든 아무리 생각해도 바디장이 제일 낫다 싶었다. '디'음가가 앞에 오고나 맨 뒤에 오면 왠지 모자란 느낌이 든다. '디비지다' '문디' 등의 부정적 이미지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바디, 디바장, 바장디 보다는... 확실히 바디장이 낫다.
이홍렬을 닮은 엄기영 목사님, 그리고 말씀
강사 목사님은 정말 이홍렬을 닮으셨다. 외양도 이홍렬과 비슷하셨지만, 설교 중간중간 보여주셨던 그 표정과 목소리는 훨씬 더 닮았다. '참참참'에서 이홍렬이 보여주던 현란한 부억토크가 연상되었다. 물론 그저 웃기는데 집중하던 이홍렬 아저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해학을 보여주셨다. 특히 토끼의 귀가 길어진 이유는 정말 압권이었다. 아직도 우리 큰애는 정말 아담과 하와의 처음 가죽옷이 토끼 가죽인줄 안다. 토끼도 불쌍하고 우리 큰애도 불쌍하다. 어떻든 토끼든 아니든 어떤 동물 하나는 당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고, 곧바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은 틀림 없겠지.
세번의 저녁집회와 세번의 아침 경건회를 통해 말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를 누렸다.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마치 갱지속에 쓰여진 옛 4B연필의 바랜 흔적이 선명한 채색화로 다시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참 오랫동안 가인의 세계에 휘둘리며 살아왔고, 그 가운데 조금 앞서나가면 기뻐하고, 조금 뒤쳐지만 절망했더랬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나라의 규범과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에 늘 고민이 있었던 차라, 이번 말씀을 통해 많은 부분 정리가 될 수 있었다. 이제 대치동 학원가의 법이 아닌 성령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아이들을 꿈꿀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강사 목사님 말씀 중에,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같은 영웅들보다 그들에 의해 이끌리던 이름없는 이스라엘 히브리 백성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이야기하실 때는 큰 감동을 받았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겨진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 때문이라는 말씀. 화목사님이 구겨지시고 탈모가 일찍 진행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제자들 지체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그저 웃고 넘길 메시지가 아니었다. 흔히들 주인공을 주목하고 흠모하지만, 하나님의 열정과 애정의 대상은 외려 주인공보다 약한 지체들일 수 있다는 메시지... 암튼 완전히 새로운 버전으로 구성된 요셉의 일생 스토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덧붙이면, 땅콩장사 할아버지의 예화가 가장 가슴을 쳤다. 당당히 망하고, 당당히 실패하는 이를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역사. 문제는 내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그런 삶을 구성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고 두고 고민할 일이다.
조모임, 어색함에서 자유함으로
새로 교회에 등록하고, 무던히도 자기 소개를 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련회 4조 (조장 정송곤 집사님, 부조장 윤성한 집사님) 에서 예의 그 뻘쭘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 할 수만 있거든 매우 피하고 싶다.ㅠㅠ) 교제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부부는 침묵과 어색한 웃음의 댓가가 배탈로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이번 수련회 조모임은 무언가 달랐다. 첫날 모임을 인도하신 윤성한 부조장님의 캐릭터와 둘째날부터 인도하신 정송곤 조장님의 캐릭터는 180도 달랐다. (이항대립적 관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캐릭터셨다) 그런데 그 가운데 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열정적이고 뜨거운 복음전도자와 차분하고 조용하신 수학선생님의 대조적 캐릭터는 매우 흥미로웠다. 각양 다른 성정으로 같은 복음이 전파되고 나누어지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 신선했다고나 할까?
파파기도는 그 어색하고 막 나간 예화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다가설 것인가를 근본부터 점검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입에 붙은 관용적 기도와 수사학적 표현에서 벗어나 중심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자세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나눔의 시간을 가지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이야기들...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당신을 내게만 드러내셨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감격적이었다.
수련회 장소와 숙소
수련회 장소는 완벽했다. 도심의 텁텁한 공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맑고 차가운 횡성의 공기는 심신을 새롭게 했다. 휴양림 산책로를 걸으며 온몸으로 누릴 수 있었던 피톤치드의 느낌은, 말씀의 부으심으로 내 영혼이 누린 기쁨과 더불어 몸이 누리는 또 하나의 호사였다.
숙소에서 8명의 외간남자(?)들과 3박을 보낸 것은 특별한 추억이었다. 출장이 잦지만 무슨일이 있어도 싱글룸투숙만을 고집하는 나는 군생활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인사들과 방을 써 본적이 없기에 매우 생소한 경험이긴 했다. 무엇보다 첫날 잠자리에서 구성된 일명 '스노어링 오케스트라'는 환상적이었다. 독특한 음역대의 소리, 도무지 종잡을 수없는 포스트모던 리듬,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끈기있는 연주... 특히 헬기소리, 그 헬기에서 자동화소총으로 사격하는 소리 및 전투기 기동하는 소리와 장갑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 등 초현대식 군사 장비를 연상케하는 강한 오케스트라였다. 새벽까지 뒤척이며 감상하다가 간신히 잠이들었는데 나 역시 후반부에 강력한 연주자로 동참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확률은 매우 높다) 다음날부터 일부 룸메이트들이 홀연히 사라진 이유와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연륜이 있으신 집사님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젊은 형제 집사님들의 패기와 에너지는 보고만 있어도 힘과 의욕을 갖게 한다. 함께 자고 생활하면서 얻는 기쁨이 이런것이구나 싶었다.
자유롭지 않던 자유시간
수련회에서 자유시간을 갖는다는것은 참 생소하다. 남전도회에서는 축구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으나, 개떼 축구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육군 축구에서조차 전우들의 만장일치로 배제되었던 내가 굳이 교인들앞에 볼성 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릴 필요는 없었다. 물론 너무나 하고 싶고 원래 잘하지만 발가락에 지병이 있기 때문이라는 구실은 늘 준비되어 있다. 어떻든 갈 바를 몰라 헤매다가 결국 첫날 자유시간에는 횡성 온천 "실크로드"로 마음을 정하고 길을 나섰다. 큰 녀석은 오는 날부터 청소년부에 들어가 우리 시야에 포착되지 않고, 아직은 통제범위 안에 있는 막내만 데리고 아내와 길을 나선 것이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강원도 최고의 수질과 초현대식 시설을 자랑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횡성온천이라고 근사하게 표현되어 있다. 물론 100% 믿지는 않지만 생긴지 얼마 안되었다기에 기본 시설은 있겠거니 하고 갔으나... 아뿔사 시설은 1970년대 초 아버지 손잡고 따라 다니던 수유리 빨랫골 대호탕보다도 못했다. ('실크로드'라는 온천 이름이 처음엔 의아했는데 알것도 같았다. 불가마 근처에 거미줄이 많아 매우 '실키'했기 때문이다.)
불가마는 매우 비좁았고, 도저히 앉아 있을 형편이 못되어 가족 찜질방에 누울 요량으로 찾아들었는데 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곳이었다. 커다란 용(龍) 그림도 있고, '하면된다'도 써있고, 이발소에 걸려있을법한 물레방아 그림에, 4시에 멈춰진 벽시계와 잘 나오지 않는 구형 티브이 한 대 있는 곳이었다. 마치 퇴락한 옛 시골 마을회관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든 전날 오케스트라 연주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아련히 꿈결에서 들려오는 '이홍렬 목소리'에 잠이 퍼특 깼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내용은 '상해 찜질방~~' 뭐 이런 내용이었고... 대략 짐작이 간다. 바로 씻고 나왔다.
둘째 날 자유시간은 수영장에서 놀기로 작정한 두 아이를 보며 책을 읽기로 했다. 늘 비치 해먹위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눈을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는 로망이 있던 터라, 비슷한 흉내를 내보기로 한 것이다. 귀에는 음악을 꽂고 책 한권 들고 의자에 앉아 아이들과 책, 하늘을 번갈아 보려 했었으나... 현실은 달랐다. 하필이면 꿀벌문양의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고 와서인지 온갖 곤충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처럼 큰 곤충은 없을 터인데 도대체 왜 달려드는 것일까? 벌레들과 싸우며 허우적 거리며 책보고 음악듣고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들어왔다. 당시 옆에 계신 어떤 (교인아닌) 할머니 한분은 나를 매우 의심스럽게 쳐다보셨다. 하긴 내가 봐도 좀 이상하긴 할 것 같다.
예배의 정경과 작은 이적
본디 성격이 좀 까탈스러운 터라, 작은 소음이나 방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던 차에, 첫날 예배실에 자리를 잡는 순간 아차 싶었다. 의자의 삐걱거림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배실에 편만하게 울려퍼지는 삐걱거림에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귀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작게 들여오는 세밀한 '삐걱소리'는 방해가 되지만, 전체가 다 삐걱거리는 임계점을 넘으면 그건 일상의 소리가 되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어떻든 이 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이번 수련회의 이적이었다.
1층에 자모실이 준비되어 있는데도 어린 아이를 안고 꾸역꾸역 본예배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젊은 자매들 모습을 보며 조금 의아했다. 저 아이들이 울기라도 하면 예배 전체가 방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그런데 조금 지나며 그 자매들의 모습 자체가 큰 은혜가 되었다.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면, 아이들 데리고 마음 졸이면서까지 이 앞으로 나아와 말씀들으려고 목말라 있는 것일까? 그 모습이 아름답고 예쁘니, 우는 아이들조차 예쁘고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좋은 것을 사모하여 예수 앞에 자리잡아 고개 올려 끈질기게 주님 바라보는 마리아가 생각났다. 그 편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것이리라. 뛰어다니는 아이들, 울어대는 아이들이 감동의 소재가 된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말씀이 내려와 마음이 열리면 일상적인 방해거리들이 은혜를 받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예쁘고 다 고마웠다.
잊을 수 없는 정경은, 마지막날 저녁집회 후, 엄기영 목사님과 화목사님이 진하게 포옹하시는 장면이었다. 코끝이 찡했다. 결코 회중석에 앉아 있던 성도들은 알 수 없는 목회 동지들만의 뜨거운 무엇인가가 오고가셨겠지. 그 마음을 우리는 다만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고. 가능하다면 그 마음들을 조금이나마라도 이해해드리고 싶었다. 집회 내내 들었던 생각은 강사목사님과 담임목사님의 생각과 세계관이 참 놀랍도록 비슷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확신에 찬 말씀을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횡성 한우의 비밀, 배신의 댓가
마지막 폐회예배 마치고 우리 가족은 의기투합하여 일찍 수련회장을 떴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이 표현은 좀 이상하다. 네 개의 발을 못쓴다는 뜻인건가?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는데) 큰녀석이 한우를 먹고 싶을 거라고 내가 주장하여 마지막 식사를 건너뛰고 슬쩍 빠져나온 것이다. 교우들을 배신하고 우리끼리만 맛난거 먹으러 간다는 약간의 죄책감은 없지 않았으나 마블링 곱게 아로새겨진 한우를 그리며 이내 자유로워졌다. "그래! 눌림에서 누림으로야"
배신의 댓가는 처절했다. 인터넷 정보에 의지하여 최고의 맛집을 찾아갔지만 결론적으로 인터넷 정보는 순 엉터리였다. 주인과 친인척들이 클릭질을 통해 올려놓은 게 틀림없다. 육질은 전혀 좋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구웠는데도 육즙조차 없는 3등품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가격은 싸지도 않고... 항의를 할까 하다가, 제자들교회 동료들 배신하고 우리끼리만 맛난 것 먹겠다고 빠져나온 댓가라고 생각을 하기로 했다. 자꾸 생각을 하다보니 수련회 마지막 메뉴가 혹시 한우 등심 구이가 아니었을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다음부터는 끝까지 수련회에서 주는대로 먹고 오자고 다들 무언의 약속을 했다.
2009 바디장 수련회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눌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가 나를 누르고 있던 가인 세계의 그물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자유함을 맛보고, 기도의 본령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게도 미아리 '대지극장'이 존재하기에 이런 기쁨과 감격이 언제 반감되고 사그라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제를 이어가면 늘 채워주실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아직 신입 교우 신분이라 여적지 생소하고 어색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먼저 다가와주시고, 인사해주셔서 우리 부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열린 마음에 기반한 교제는 또 다른 깊이가 있었습니다. 또하나의 문지방을 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씩 넘어가다보면 어느새 어색함도 사라지고, 더 열심히 일하는 저희 부부가 되겠지요. 그 때까지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저 머릿속에만 남겨놓기에는 조금 아쉬워 몇가지 정경들을 글로 스케치 해보았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정제 과정없이 막 써내려갔기에 조금 튈 수도 잇고, 글투가 거칠기도 하겠지만 그냥 편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참 내년 2010 수련회는 그냥 '장수련회'가 되는건가요? 이것도 아직 모르고 있으니 이래저래 저희 부부는 아직 갈 길이 먼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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