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교회 수련회 (2009.8) 바실래이아... 하나님 나라

바디장, 그 이름의 비밀

처음 교회 온 사람들은 모든 것이 낯설다. 예배 형식부터 시작해서 교회에서만 쓰는 독특한 명칭들 (jargon)이 있다. 열심히 익혀야 하는데... '바디장'이 그 첫 관문이었다. 분명 여름 수련회가 있긴 있을텐데, 이번에는 바디장 연합 수련회란다. 머리를 써본 결과 틀림없이 각 기관장 연합 수련회일 듯 했다. 바디의 장이라... 그런데 그 기관장 수련회를 400명 넘게 간다기에 좀 의아하긴 했다. 그정도 규모면 거의 사랑의 교회 급인것 같은데... 기관장이 그렇게 많았던가? 전 교인의 기관장화가 아닌바에야,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숨어있는걸까? 내가 모르는 예배의 공간과 시간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바울, 디모데, 장년의 머릿글자 조합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이 최근이었다. 이런 고민은 내 아내도 똑같이 했다. 둘 다 참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어떻든 아무리 생각해도 바디장이 제일 낫다 싶었다. '디'음가가 앞에 오고나 맨 뒤에 오면 왠지 모자란 느낌이 든다. '디비지다' '문디' 등의 부정적 이미지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바디, 디바장, 바장디 보다는... 확실히 바디장이 낫다.

이홍렬을 닮은 엄기영 목사님, 그리고 말씀

강사 목사님은 정말 이홍렬을 닮으셨다. 외양도 이홍렬과 비슷하셨지만, 설교 중간중간 보여주셨던 그 표정과 목소리는 훨씬 더 닮았다. '참참참'에서 이홍렬이 보여주던 현란한 부억토크가 연상되었다. 물론 그저 웃기는데 집중하던 이홍렬 아저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해학을 보여주셨다. 특히 토끼의 귀가 길어진 이유는 정말 압권이었다. 아직도 우리 큰애는 정말 아담과 하와의 처음 가죽옷이 토끼 가죽인줄 안다. 토끼도 불쌍하고 우리 큰애도 불쌍하다. 어떻든 토끼든 아니든 어떤 동물 하나는 당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을 것이고, 곧바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던 것은 틀림 없겠지.

세번의 저녁집회와 세번의 아침 경건회를 통해 말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를 누렸다. 하나하나 되짚어 보면 마치 갱지속에 쓰여진 옛 4B연필의 바랜 흔적이 선명한 채색화로 다시 드러나는 느낌을 받았다. 참 오랫동안 가인의 세계에 휘둘리며 살아왔고, 그 가운데 조금 앞서나가면 기뻐하고, 조금 뒤쳐지만 절망했더랬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나라의 규범과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에 늘 고민이 있었던 차라, 이번 말씀을 통해 많은 부분 정리가 될 수 있었다. 이제 대치동 학원가의 법이 아닌 성령의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아이들을 꿈꿀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

무엇보다 강사 목사님 말씀 중에, 요셉과 모세와 다윗과 같은 영웅들보다 그들에 의해 이끌리던 이름없는 이스라엘 히브리 백성들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이야기하실 때는 큰 감동을 받았다. 모세가 광야에서 구겨진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백성 때문이라는 말씀. 화목사님이 구겨지시고 탈모가 일찍 진행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제자들 지체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그저 웃고 넘길 메시지가 아니었다. 흔히들 주인공을 주목하고 흠모하지만, 하나님의 열정과 애정의 대상은 외려 주인공보다 약한 지체들일 수 있다는 메시지... 암튼 완전히 새로운 버전으로 구성된 요셉의 일생 스토리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덧붙이면, 땅콩장사 할아버지의 예화가 가장 가슴을 쳤다. 당당히 망하고, 당당히 실패하는 이를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역사. 문제는 내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그런 삶을 구성할 수 있을까에 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고 두고 고민할 일이다.

조모임, 어색함에서 자유함으로 

새로 교회에 등록하고, 무던히도 자기 소개를 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련회 4조 (조장 정송곤 집사님, 부조장 윤성한 집사님) 에서 예의 그 뻘쭘한 분위기로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 할 수만 있거든 매우 피하고 싶다.ㅠㅠ) 교제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부부는 침묵과 어색한 웃음의 댓가가 배탈로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이번 수련회 조모임은 무언가 달랐다. 첫날 모임을 인도하신 윤성한 부조장님의 캐릭터와 둘째날부터 인도하신 정송곤 조장님의 캐릭터는 180도 달랐다. (이항대립적 관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캐릭터셨다) 그런데 그 가운데 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열정적이고 뜨거운 복음전도자와 차분하고 조용하신 수학선생님의 대조적 캐릭터는 매우 흥미로웠다. 각양 다른 성정으로 같은 복음이 전파되고 나누어지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 신선했다고나 할까? 

파파기도는 그 어색하고 막 나간 예화들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다가설 것인가를 근본부터 점검하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입에 붙은 관용적 기도와 수사학적 표현에서 벗어나 중심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자세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나눔의 시간을 가지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내 이야기들...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당신을 내게만 드러내셨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감격적이었다.

수련회 장소와 숙소

수련회 장소는 완벽했다. 도심의 텁텁한 공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맑고 차가운 횡성의 공기는 심신을 새롭게 했다. 휴양림 산책로를 걸으며 온몸으로 누릴 수 있었던 피톤치드의 느낌은, 말씀의 부으심으로 내 영혼이 누린 기쁨과 더불어 몸이 누리는 또 하나의 호사였다.

숙소에서 8명의 외간남자(?)들과 3박을 보낸 것은 특별한 추억이었다. 출장이 잦지만 무슨일이 있어도 싱글룸투숙만을 고집하는 나는 군생활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불특정 다수의 인사들과 방을 써 본적이 없기에 매우 생소한 경험이긴 했다. 무엇보다 첫날 잠자리에서 구성된 일명 '스노어링 오케스트라'는 환상적이었다. 독특한 음역대의 소리, 도무지 종잡을 수없는 포스트모던 리듬, 그리고 새벽까지 이어지는 끈기있는 연주... 특히 헬기소리, 그 헬기에서 자동화소총으로 사격하는 소리 및 전투기 기동하는 소리와 장갑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 등 초현대식 군사 장비를 연상케하는 강한 오케스트라였다. 새벽까지 뒤척이며 감상하다가 간신히 잠이들었는데 나 역시 후반부에 강력한 연주자로 동참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확률은 매우 높다) 다음날부터 일부 룸메이트들이 홀연히 사라진 이유와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연륜이 있으신 집사님들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젊은 형제 집사님들의 패기와 에너지는 보고만 있어도 힘과 의욕을 갖게 한다. 함께 자고 생활하면서 얻는 기쁨이 이런것이구나 싶었다.

자유롭지 않던 자유시간

수련회에서 자유시간을 갖는다는것은 참 생소하다. 남전도회에서는 축구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으나, 개떼 축구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육군 축구에서조차 전우들의 만장일치로 배제되었던 내가 굳이 교인들앞에 볼성 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릴 필요는 없었다. 물론 너무나 하고 싶고 원래 잘하지만 발가락에 지병이 있기 때문이라는 구실은 늘 준비되어 있다. 어떻든 갈 바를 몰라 헤매다가 결국 첫날 자유시간에는 횡성 온천 "실크로드"로 마음을 정하고 길을 나섰다. 큰 녀석은 오는 날부터 청소년부에 들어가 우리 시야에 포착되지 않고, 아직은 통제범위 안에 있는 막내만 데리고 아내와 길을 나선 것이다.

인터넷 정보에 의하면 강원도 최고의 수질과 초현대식 시설을 자랑하는 오아시스와 같은 횡성온천이라고 근사하게 표현되어 있다. 물론 100% 믿지는 않지만 생긴지 얼마 안되었다기에 기본 시설은 있겠거니 하고 갔으나... 아뿔사 시설은 1970년대 초 아버지 손잡고 따라 다니던 수유리 빨랫골 대호탕보다도 못했다. ('실크로드'라는 온천 이름이 처음엔 의아했는데 알것도 같았다. 불가마 근처에 거미줄이 많아 매우 '실키'했기 때문이다.) 

불가마는 매우 비좁았고, 도저히 앉아 있을 형편이 못되어 가족 찜질방에 누울 요량으로 찾아들었는데 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곳이었다. 커다란 용(龍) 그림도 있고, '하면된다'도 써있고, 이발소에 걸려있을법한 물레방아 그림에, 4시에 멈춰진 벽시계와 잘 나오지 않는 구형 티브이 한 대 있는 곳이었다. 마치 퇴락한 옛 시골 마을회관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든 전날 오케스트라 연주로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아련히 꿈결에서 들려오는 '이홍렬 목소리'에 잠이 퍼특 깼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내용은 '상해 찜질방~~' 뭐 이런 내용이었고... 대략 짐작이 간다. 바로 씻고 나왔다.

둘째 날 자유시간은 수영장에서 놀기로 작정한 두 아이를 보며 책을 읽기로 했다. 늘 비치 해먹위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눈을 들어 수평선을 바라보는 로망이 있던 터라, 비슷한 흉내를 내보기로 한 것이다. 귀에는 음악을 꽂고 책 한권 들고 의자에 앉아 아이들과 책, 하늘을 번갈아 보려 했었으나... 현실은 달랐다. 하필이면 꿀벌문양의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고 와서인지 온갖 곤충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처럼 큰 곤충은 없을 터인데 도대체 왜 달려드는 것일까? 벌레들과 싸우며 허우적 거리며 책보고 음악듣고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들어왔다. 당시 옆에 계신 어떤 (교인아닌) 할머니 한분은 나를 매우 의심스럽게 쳐다보셨다. 하긴 내가 봐도 좀 이상하긴 할 것 같다.

예배의 정경과 작은 이적

본디 성격이 좀 까탈스러운 터라, 작은 소음이나 방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던 차에, 첫날 예배실에 자리를 잡는 순간 아차 싶었다. 의자의 삐걱거림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배실에 편만하게 울려퍼지는 삐걱거림에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일정 시간이 지나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귀에 더 이상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디선가 작게 들여오는 세밀한 '삐걱소리'는 방해가 되지만, 전체가 다 삐걱거리는 임계점을 넘으면 그건 일상의 소리가 되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어떻든 이 소리가 내 귀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이번 수련회의 이적이었다.

1층에 자모실이 준비되어 있는데도 어린 아이를 안고 꾸역꾸역 본예배실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젊은 자매들 모습을 보며 조금 의아했다. 저 아이들이 울기라도 하면 예배 전체가 방해를 받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그런데 조금 지나며 그 자매들의 모습 자체가 큰 은혜가 되었다.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면, 아이들 데리고 마음 졸이면서까지 이 앞으로 나아와 말씀들으려고 목말라 있는 것일까? 그 모습이 아름답고 예쁘니, 우는 아이들조차 예쁘고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좋은 것을 사모하여 예수 앞에 자리잡아 고개 올려 끈질기게 주님 바라보는 마리아가 생각났다. 그 편을 택하는 것이 옳은 것이리라. 뛰어다니는 아이들, 울어대는 아이들이 감동의 소재가 된 것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말씀이 내려와 마음이 열리면 일상적인 방해거리들이 은혜를 받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예쁘고 다 고마웠다.

잊을 수 없는 정경은, 마지막날 저녁집회 후, 엄기영 목사님과 화목사님이 진하게 포옹하시는 장면이었다. 코끝이 찡했다. 결코 회중석에 앉아 있던 성도들은 알 수 없는 목회 동지들만의 뜨거운 무엇인가가 오고가셨겠지. 그 마음을 우리는 다만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고. 가능하다면 그 마음들을 조금이나마라도 이해해드리고 싶었다. 집회 내내 들었던 생각은 강사목사님과 담임목사님의 생각과 세계관이 참 놀랍도록 비슷하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확신에 찬 말씀을 받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횡성 한우의 비밀, 배신의 댓가

마지막 폐회예배 마치고 우리 가족은 의기투합하여 일찍 수련회장을 떴다. 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이 표현은 좀 이상하다. 네 개의 발을 못쓴다는 뜻인건가? 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는데) 큰녀석이 한우를 먹고 싶을 거라고 내가 주장하여 마지막 식사를 건너뛰고 슬쩍 빠져나온 것이다. 교우들을 배신하고 우리끼리만 맛난거 먹으러 간다는 약간의 죄책감은 없지 않았으나 마블링 곱게 아로새겨진 한우를 그리며 이내 자유로워졌다. "그래! 눌림에서 누림으로야"

배신의 댓가는 처절했다. 인터넷 정보에 의지하여 최고의 맛집을 찾아갔지만 결론적으로 인터넷 정보는 순 엉터리였다. 주인과 친인척들이 클릭질을 통해 올려놓은 게 틀림없다. 육질은 전혀 좋지 않았고, 최선을 다해 구웠는데도 육즙조차 없는 3등품 정도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가격은 싸지도 않고... 항의를 할까 하다가, 제자들교회 동료들 배신하고 우리끼리만 맛난 것 먹겠다고 빠져나온 댓가라고 생각을 하기로 했다. 자꾸 생각을 하다보니 수련회 마지막 메뉴가 혹시 한우 등심 구이가 아니었을까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다음부터는 끝까지 수련회에서 주는대로 먹고 오자고 다들 무언의 약속을 했다.

2009 바디장 수련회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눌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다가 나를 누르고 있던 가인 세계의 그물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큰 자유함을 맛보고, 기도의 본령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게도 미아리 '대지극장'이 존재하기에 이런 기쁨과 감격이 언제 반감되고 사그라들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자들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제를 이어가면 늘 채워주실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아직 신입 교우 신분이라 여적지 생소하고 어색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먼저 다가와주시고, 인사해주셔서 우리 부부에게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열린 마음에 기반한 교제는 또 다른 깊이가 있었습니다. 또하나의 문지방을 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씩 넘어가다보면 어느새 어색함도 사라지고, 더 열심히 일하는 저희 부부가 되겠지요. 그 때까지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저 머릿속에만 남겨놓기에는 조금 아쉬워 몇가지 정경들을 글로 스케치 해보았습니다. 생각나는대로 정제 과정없이 막 써내려갔기에 조금 튈 수도 잇고, 글투가 거칠기도 하겠지만 그냥 편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참 내년 2010 수련회는 그냥 '장수련회'가 되는건가요? 이것도 아직 모르고 있으니 이래저래 저희 부부는 아직 갈 길이 먼가봅니다.^^


예수로 연결되는 계보

지난 주일 오후예배 단기선교와 국내사역 보고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요새 이렇습니다. 맨날 감동만 받습니다. 오래 가야할텐데요.~~) 듣고 있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을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동안 그저 하나님이 나를 택하셨기에 나는 당연히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는게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일은 지난 것! (what is gone is gone!) 그랬기에 현재 내 신앙의 상태와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에만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다가 주일 오후예배 영상자료를 보면서 내가 예수를 믿게 된 경위를 찬찬히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감동을 받아 예수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소리를 듣고 엎어져 예수를 믿은 것도 아닙니다. 자연재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은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교회에 데리고 다니셨기에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럼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는 어떻게 예수를 믿으셨을까 궁금했습니다. 내 아버지 인운섭 집사님은 내 할머니 김연순 권사님의 강권으로 어릴적부터 예수를 믿으셨습니다. 내 어머니 정경애 권사님은 내 외할머니 이경주 권사님의 강권으로 역시 아기 시절부터 예수를 믿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충남 예산군 오가면 오촌리 오촌감리교회 어느 할머니에게 복음을 들으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전북 정읍 성광교회 어느 권사님에게 복음을 들으셨고 예수 앞에 굴복하셨습니다. 내 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전남 벌교땅 어느 곳에서 처 외조모께 복음을 전했고, 그 복음이 장모님을 통해 내 처 정희주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내 장모님이 당신 시모께 끈질기게 복음을 전해, 결혼 35년만에 장인어른과 온 식구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왔습니다. 이러한 양가의 복음의 물결이 1994년 하나로 합해져 저희 부부가 결혼을 했고, 그 뿌리는 다시 건이와 영이에게 이어집니다. 이 정도는 대략 알겠는데 그 이전 히스토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누군가가 내 조모, 외조모, 그리고 처외조모를 전도하신 분들께 복음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 역시 누군가에게 복음을 직접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다보면 조선 땅을 사모하여 이 땅에 발 디딘 벽안의 선교사님들로 대개 수렴이 될 것입니다.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님들이지요. 그리고 그 분들 역시 고국 땅에 살 던 시절,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이역만리 조선 선교에 인생을 걸었겠지요. 이렇게 올라가고 올라가다보면 초대교회와 사도들이 나올 것이고 (아마 우리는 드로아 환상으로 방향을 바꾼 바울사도 계열이 아닐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께 연결이 되는 건 당연한 이치겠지요. 구체적인 연결고리는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이거 참 신기합니다. 나중에 천국가면 이 체인을 한번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제자들 교회 온 성도님들도 다 나름대로의 계보를 가지고 있겠지요. 중간에 겹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까요? ㅎㅎ

내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하던 복음의 근원을 추적해서 올라가면 예수님 자신께로 이어진다는 것. 오대양 육대주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들 모두 추적해 올라가면 예수님께로만 다 모아진다는 것.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는 것.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동시에 신기했습니다. 그분이 전하신 말씀이 사도들을 통해 전해지고, 누군가가 다시 전하고, 전하고 해서 21세기 한반도 이 시공간에서 나와 조우합니다.

그 분이 갈릴리 가난한 동네를 다니시며 전하시던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성서라는 인쇄매체를 통해 전해짐과 동시에 누군가의 입과 귀를 통해 나에게 그대로 전해진 이 놀라운 사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추상적이고 거대한 하나의 추세, 또는 흐름으로서의 복음전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눈과 눈을 마주치고 역경 속에서 기도하며 복음을 전한 '삶'의 연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전하는 한마디가 어쩌면 후일 한 민족을 바꿀 수도 있겠더군요. 단기선교에서 지나가면서 한마디 했던 구원의 도리가 세계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겠지요. 선교사님들이 눈에 보이는 열매와 상관 없이 한 영혼을 위해 자근자근 설명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역시 역사를 바꾸는 그런 기가 막힌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히잡을 둘러쓰고 살짝 하나님을 전하는 단기 선교팀의 사진을 보며, 바로 그 모멘트가 후일 그 땅을 뒤흔들어놓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혼자 즐거워했습니다. 수십년이 흐르고 그 땅에서 누군가가 저랑 똑같은 생각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누가 도대체 우리에게 이 복음을 전했을까 하면서요.^^ 이런 생각을 하면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생각하며 히죽거리지 않을 수 없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예수 믿으라는 말 한마디 꺼내기가 쉽지 않은걸까요? ㅠㅠ


아이티

10월말 쯤 이었습니다. 맡았던 국제회의를 마무리하고 한동안 아이들과 시간을 갖지 못한 미안함에 가족과 함께 교보문고와 광화문 광장으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길을 가다보니 광화문 네거리에서 진흙비스킷 체험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티라는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진흙을 과자모양으로 빚어 실제로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그 아이들이 먹는 흙과자를 만들며 후원하는 행사였습니다. 영이는 진흙으로 과자모양을 만들어보았고, 사람이 과연 먹을 수 있을지 의심이 가는 이런 흙과자를 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마음이 움직여 ARS를 통해 후원을 했지만 바로 잊었습니다. 그 나라가 바로 아이티였습니다.

그 아이티에 대 재앙이 임했습니다. 많게는 20만이 죽었다고 합니다. 금세기 최대 재앙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들어오는 외신보도나 현지 대사관 전문을 유추하면 아비규환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담한 언론들은 '신이 외면한 땅', '하나님이 계시다면...' 등의 언사들을 내어놓습니다. 혹자들은 희망이 없는 지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현지 한국인 선교사와의 대담이 CBS 방송을 탔습니다. 현지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며 '사랑의 교회'를 시무하는 백삼숙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앞부분 생략)

앵커: 만약 우리가 한국에서 백삼숙 선교사께 좀 보내고 싶다고 하면 다른 루트는 없나요?

백삼숙: 없고요. 제가 알기로는 도미니카 밖에 아직은 안 되거든요. 공항이 폐쇄된 상태여서.

앵커: 도미니카를 통해서?

백삼숙: 도미니카에 의해서 육로로 밖에 할 수가 없어요.

앵커: 언제쯤이면 구호품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소문들도 없습니까?

백삼숙: 없죠. 제가 주로 시테솔레이 쪽을 목회를 했었는데 그쪽 주민들이 날마다 찾아옵니다. 일단은 조금씩이라도 나눠주고는 있지만 역부족이고요.

앵커: 앞으로 목사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백삼숙: 이미 저는 여기서 죽기로 결정을 했고요. 저는 여기 살 겁니다.

앵커: 그 말씀은 떠나지 않고 계속 그 아이들, 고아들을 돌보고 계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백삼숙: 네, 고아뿐만 아니라 제가 수호할 수 있는 정말 모든 병든 자들은 제가 치료할 수 있도록 하고요. 치료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저는 그 계획으로 있어요.

앵커: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 남더라도 끝까지 치료하면서 그 곳을 지키겠다는 말씀이시군요?

백삼숙: 네.

앵커: 알겠습니다. 목사님, 기도하겠습니다. 또 여기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지 더 열심히 저희들 찾아보겠습니다.

백삼숙: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로 감사합니다.

"이미 저는 여기서 죽기로 결정을 했고요. 저는 여기 살겁니다"

아이티에서 뼈를 묻을 각오를 결연히 보여준 64세의 노 선교사는 하나님이 미리 보내신 분이었습니다. 고아들의 어미가 되어 아이들을 품어안고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계신 백선교사님을 10년전에 아이티에 보내셔서 이 어려운 때에 '남겨진 자'로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


정서기관은 제가 가장 신뢰하는 외교관입니다. 외양은 자유롭지만 중심은 하나님께 깊이 헌신된 청년입니다. 때가되어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외교부를 나와 신학을 할 마음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는 친구입니다. 비록 입부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정서기관으로 인해 기쁨을 얻습니다.

이 친구는 일을 몰고다니는 사람입니다. 저와 같이 근무할 때 전현직 정상 불러다 국제회의 하느라 거의 반년동안 초죽음이 되도록 일했습니다. 매일 새벽 1-2시 퇴근, 아침 6시 출근이 일상이었고 함께 밤도 부지기수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하지 않고 그 일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이 직접 시키시는 일들로 받아들이던 정서기관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정서기관은 뜻밖의 인사발령을 받았습니다. 영어와 스페인어에 능통한 친구였기에 유럽 혹은 중남미 강대국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했는데, 갑자기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발령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도 잘하고 공을 많이 세웠는데 좀 잘사는 나라 공관으로 보내주지 않은 인사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까운 인재를 '별로 일 없는' 공관으로 발령을 내다니요. 스페인이나 멕시코, 브라질 등의 선호공관이 아니었기에 정서기관 본인도 좀 실망을 했고, 좋은 곳으로 보내주지 못한 저희도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습니다.

떠나는 날, 정서기관은 "교수님 꼭 놀러오세요. 바쁘지 않은 공관이기에 제가 잘 모실께요. 휴가 내서 가족과 함께 꼭 오세요" 하고 떠났습니다. 바쁘지 않은 공관임을 강조하면서요.^^ 당시 도미니카에 정서기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평안과 축복이 그 땅 온나라에 임하기를, 3년간 도미니카를 위한 제사장 역할을 정서기관이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했었는데...  지금 아이티를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십니다.

지금 3인 공관인 도미니카 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은 전세계의 한국 대사관 중에 가장 바쁩니다. 바로 아이티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이티에는 한국 대사관이 없어서 도미니카 한국 대사관에서 관할합니다. 때문에 한국에서 파견된 긴급 구호팀을 비롯, 각종 한국 NGO, 기자단 및 정부 요원들을 지원하고 현지 파견을 진두지휘해야 합니다. 아이티 수도인 포르토 프랭스 공항이 마비가 되어 국제 구호인력과 물자들은 접경한 도미니카 산토도밍고에 내려 육로로 수송중입니다. 지금 정서기관은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자신을 보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300여킬로미터 떨어진 재앙의 땅을 육로로 계속 왕복하며 현지 구호팀을 조율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어와 영어 통역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눈길'을 가지고 기도하는 친구이기에 얼마나 맹활약을 하고 있을지 선합니다. 어제 전화통화를 잠깐 했습니다. 몸은 녹초가 되어 있겠지만, 목소리는 씩씩했습니다. 그를 통해 '버려진 땅'이라 불리우는 아이티가 소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티의 역사는 고난 그 자체이더군요. 스페인이 점령하면서 원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아프리카 노예들을 강제로 데려와 정착시킨 땅... 열강과 강대국의 점령, 괴뢰 정권들의 폭압적 독재로 인해 빈곤이 대물림되고 있는 땅에 믿기지 않는 고통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 가운데 임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보내시고 일하게 하시는 작은 증거들을 발견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일하고 있겠지요.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차곡차곡 쌓여나가기를 구체적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손을 내미는 한, 그리고 백선교사님과 정서기관이 거기 계신 한 아이티는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닐것입니다. 고통 중에 나타내실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합니다.

(2010. 1.19)


그러려니 바실래이아... 하나님 나라

얼마전 도미니카 대사관 정서기관 이야기를 올렸었습니다. 비록 뜻하지 않은 참사가 발생해 일이 몰려들고 몸은 지치지만 넉넉히 감당해 나가고 있다고요. 보내신 바 사명이라는 확신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잘 아시겠지만 몇일전 모 방송사의 보도로 인해 당혹스러운 일이 생겼습니다. 현지 대사관 직원들이 외교부 및 외교부 산하단체인 국제협력단 단원들만 챙기고 정부가 급파한 119 구조대원들은 물도 없고, 화장실도 하나밖에 없는 공터에서 텐트치고 자게 한다는 보도였습니다. 공관 직원들은 에어컨 나오는 안락한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맥주 쌓아놓고 머문다는 식으로 방송에 나오니 119 구조대원들의 열악한 상황과 대비가 확연하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대사님 인터뷰가 자기 먹고 쓰고 입을 것 정도는 알아서 가져와야 한다는 식으로 클리핑 되어 방송이 되는 바람에 반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비교적 공관 사정과 형편을 알고 있는 저조차도 그 뉴스를 보면서 의아했을 정도이니, 시청자들의 흥분은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그날 외교부 홈페이지는 다운이 될 정도였고, 대사 소환까지 요구하는 등 정신이 없었습니다. 다른 공관 같았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텐데 정서기관이 거기 근무하고 있기에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상황을 잘 알고 싶었고요.

각설하면 지금은 완전한 오보로 밝혀졌고, 기자의 악의적인 편집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어제 9시 뉴스에서 사과방송을 하더군요. 평상시 제가 많이 신뢰하던 방송사였기에 저 역시 배신감이 작지 않았습니다.

대사님과 현지 공관 3명의 직원들이 아이티와 도미니카 양국에서 동분서주하고 있었습니다. 약 1200명의 한국인 의료구호단체, 시민사회 및 선교단체 자원봉사자들이 대사관의 도움을 요청했답니다. 기자만 50명이 넘게 와서 취재 지원을 부탁하고... 거기에 예외 없이 높으신 분들도 나타나시니 3명의 직원이 돌아가면서 한명은 아이티에 한명은 도미니카에 그리고 한명은 양국을 오가면서 일하려니 물리적으로 거의 탈진 직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을 가지고 일하던 차에 이런 오보가 발생했고 어마어마한 욕을 먹어야 했습니다. 잠 제대로 못자고, 치안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거리를 활보하면서도 그리 힘이 들다는 생각 못했는데, 아무 잘못 없이 인터넷과 전화로 욕하는 멧세지를 고스란히 받아야했던 것이지요.

지난주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고 선한 일을 하면서도 욕을 먹을 때가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칭찬 받을만하다... if you suffer for doing good and you endure it, this is commendable before God'

알고보니 특이했습니다. 저는 정서기관밖에 잘 몰랐는데 최참사관과 이영사 등 대사님을 제외한 도미니카 한국대사관 3명의 외교관 모두 하나님께 헌신되었고 잘 훈련된 분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공관이지만 전 직원이 다 크리스찬, 그것도 신실한 성도인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산토도밍고 한인교회 집사님들이었던거죠.^^

현지에서 여진 발생이 일어나도, 총격전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교민 안전 확인을 위해 거리로 나아가는 등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일이 생길 때에도 서로 앞장섰고, 기도해주고 나아간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틀 동안의 정신없는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그저 묵묵히 자기 일들 감당했던 믿음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본국의 여론으로 인해 힘들었을 정서기관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습니다. "할 만해요. 교수님.  그.러.려.니. 해요. 오히려 그동안 본국에 그렇게 요청해도 아이티가 어디냐며 잘 들어주지도 않았던 의료사업과 구호사업 프로젝트가 최우선순위로 선정되었데요. 이젠 요청만 하면 다 되네요. 상황은 비참하지만 그래도 감사할 조건이예요" 하며 좋아라 합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갑자기 뭉클해졌습니다. 그저 쓰러지지만 말라고 격려하고 전화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그저 자기일 묵묵하게 하고 있는데도 얼토당토않은 오해와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도미니카 대사관 아이티 구호 직원들의 경우는 정말 화가 나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오해와 질시와 비난을 '그러려니'하고 뒤로 돌리고 그저 주어진 일 감당해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일 목사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할 일이 많기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다른 일들과 도전으로 인해 이 일을 손에서 놓아버리면 사람들이 죽어가기에... 내게 쏟아지는 비난과 오해를 '그러려니'하고 넘어갑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아름답다고 말씀이 선명히 가르쳐주시니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내 앞에 닥친 상황에 맞대응하여 같이 소리지르고 변론하고 논쟁하며 소진하기보다는 묵묵히 할 일하라는 말씀... 비록 오보 해프닝을 통한 간접 경험이었지만 작지 않은 무게로 다가옵니다.


(2010. 2. 2)

Durham에서 세렌디피티

벌써 한국을 떠나온지 석달이 지났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이곳 생활에 적응한 듯합니다. 아이들은 벌써 내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갈 운명(?) 에 대해 약간씩 걱정이 늘어갑니다. 학교 교육 시스템 자체가 성적보다는 호기심을 심어주고, 자기 호기심과 탤런트가 겹치는 최적점을 찾아주는 분위기이다 보니 학교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부하는건지 노는건지 잘 분간이 안가기도 합니다.

타의에 의해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운 길 가게 만드는' 교육을 그려봅니다. 이곳이라고 진학에 관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겠지만, 소위 '잘 사는 삶'에 대한 개념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기에 꼭 명문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긴장감은 훨씬 덜한 편입니다. 감사하게도 건이는 저희가 원하던 더럼의 명문 고등학교에 배정되지 못했습니다. 평범한 로컬 학교에 다니면서 오히려 훨씬 더 여유로운 학교 생활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3시반쯤 귀가하면 아이들은 대학 기숙사 커먼룸으로 달려가 탁구도 치고, 게임도 하고 이런저런 액티비티에 참여합니다. 처음 안식년 나올 때는 침실도 많고, 멋진 영국식 정원이 있는 하우스를 하나 얻을까 고민하다가 대학이 제공하는 숙소로 그냥 들어오게 되어 좀 아쉬웠지만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생활 커뮤니티안에서 저도 배우는게 많지만, 아내와 아이들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긴긴 영국의 겨울 밤이 심심하지 않고 늘상 커먼룸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됩니다.

교회 생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전 섬기던 뉴카슬 한인교회에서 아내는 맨투맨 구역장을 맡아 성경을 가르치고, 가끔씩 예배 반주를 합니다. 저도 청년부 성경공부를 맡게 되었는데 (자의가 아닌 담임목사님의 강권으로) 좌충우돌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좀 쉴 생각으로 왔는데 담임 목사님께서는 저희에게 여기 놀러 온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자주 주시네요.^^ 무엇보다 언젠가 화목사님께서 헌신된 한 사람이 한인교회에서 백명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하신 말이 저와 제 아내 마음속에서 영 부담으로 자리잡아왔던 터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는 백명 역할은 고사하고 사고 안치면서 그저 한 두명 역할만 더 해도 좋겠다는 심정입니다.

주일 오전에는 Durham City Baptist Church에서 예배드리며 영국 교회 커뮤니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록 작은 공동체이긴 하지만 말씀과 찬양에 은혜가 넘칩니다. 지난 주에는 Baptismal service여서 열일곱살 로라가 침례를 받았습니다. 장로교 교단과는 교리가 다르지만, 침례 받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스스로 성도들 앞에서 주를 만난 고백과 삶의 결단을 차분하게 이야기한 후, 강단 침례 풀 속 물에 푹 잠겼다가 목사님의 선언과 함께 다시 나오는 로라를 보며 함께 축하해주고, 함께 울었습니다. 더 이상 죄에 잠겨 살지 않고, 성령에 잠겨 사는 인생을 묵상했습니다.

흔히들 영국 교회가 죽었다, 유럽 교회가 죽었다고들 하지만... (열정을 잃은 것이 분명한 사실임에도) 영이 죽지 않고 남겨진 이들이 곳곳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께 헌신된 이곳 영국 교회 공동체 멤버들의 신앙고백을 들으면서,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왔는가를 들으면서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스산하긴 하지만 북잉글랜드의 가을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뼛속깊이 시린 추위가 살짝 느껴질때면 다음 안식년은 캘리포니아로 가자고 농담삼아 아내에게 말하긴 하지만, 어두움과 스산함과 서늘함 속에서 오히려 더 사유는 깊어지는 듯 합니다. 겨울과 '환난'을 굳이 등치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몸의 물리적 제약이 찾아온 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면 겨울 이후 반드시 다시 찾아올 봄을 기대하는 인생의 순환을 기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고개를 굳이 들지 않고 앞만 바라보아도 한 눈에 들어오는 '낮은 하늘'이 참 좋습니다. 하루에 한번도 하늘을 올려보지 못하고 살던 마천루와 아파트 사이의 서울생활과 가장 큰 차이입니다. 연구실 창, 도서관 통유리 창 그리고 집 거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많은 생각들이 빠른 속도로 오고갑니다. 책 읽으면서 얻는 인사이트 못지 않은 사유들을 정리하느라 바쁜 안식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자들 공동체 식구들이 많이 그립습니다.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구요. 돌아가면 비운만큼 은혜 갚으며 살아야겠다는 다짐 다시 해봅니다.

다시한번 좋으신 그리스도 평화의 인사를 전하며

영국에서 인남식 정희주 건 영 가족 올림.


귀국 전 바실래이아... 하나님 나라

재우느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영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빠가 먼저 가니까 어떠냐고요. 아빠가 자기보다 먼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이해하지못하는 영이는 일단 '슬프다'고 운을 떼더군요.^^ 그래서 아빠랑 있는게 어떤 점이 좋았느냐고 취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입니다.

"음... 아빠는 웃겨서 좋아요. 재밌잖아요. 근데 아빠 가시면 이제 웃을 일이 없네요"

"오 그래? 또 뭐가 있는데?"

"아빠는 미켈란젤로 (저희 가족이 가끔 외식하는 이태리 식당입니다)에 자주 데려가주셔서 좋았어요."

"오! 그렇구나. 그리고 또?"

"음....  아빠 그냥 주무시는게 어떨까요?"

웃겨주어서 좋고, 먹여주어서 좋다는 것 말고는 아직 아빠 존재의 의의를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지 나름대로 열심히 생각해보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도무지 아빠가 계신게 왜 좋은건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나봅니다. 하지만 저는 좋았습니다. 잠에 든줄 알고 일어나는 저를 영이가 꼭 붙잡고 안아주면서 "아빠 안가시면 안되요? 그냥 같이 계셔주세요"라고 잠결에 음냐음냐 말할 때, 자기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비록 몇달 후에 다시만나서 다시 아웅다웅하면서 살아가겠지만요.

하나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나이 마흔 중반쯤 되었고 신앙의 연륜이 어느 정도 쌓였다고 고상하고 어려운 언어를 나열해가며 그분과의 관계를 스스로 규정할 필요가 없겠다 싶었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저를 웃게 해주셔서 좋았고, 하루하루 먹여주셔서 좋았습니다.  더 이상 왜 하나님이 내 옆에 계셔주셔야 하는지 모를 때도 많지만... 자면서도 하나님 팔 사위 붙잡고, "하나님 떠나지 말아주세요... 그냥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자들 공동체가 많이 그리웠습니다. 이곳 교회 공동체에서도 참 즐겁게 어울리긴 했지만 뿌리내릴 수 없는 곳이라는 부담은 약간 있었습니다. 친정으로 돌아간다니 다시 기대가 됩니다. 주일에 인사드리겠습니다. 꾸벅.


십자가는 제로섬이다 바실래이아... 하나님 나라

'제로섬'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니 이렇게 정의하네요. '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전체의 이익이 일정하여 한쪽이 득을 보면 반드시 다른 한쪽이 손해를 보는 상태'.  영합, 조금 쉽게 말하면 똔똔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비영합게임 (non-zero sum) 인 윈윈과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혜택을 받는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만큼의 손해를 감수하는 자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제로섬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행적을 읽을 때마다 의문이 들었더랬습니다. 왜 구주께서는 그 잔을 옮겨달라고 하셔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영웅과도 같던 주인공이 클라이막스에서 갑자기 멈칫하는 순간입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도 죽음 앞에 의연했는데... 스데반 집사도 참 멋있게 순교했는데... 콜로세움에서 야수의 밥이 되던 초대교회 성도들도 찬양을 부르며 기꺼이 죽어갔는데...  서른해 사생애와, 삼년 공생애의 최종 정점에 다다른 상황에서 정작 구주께서는 왜 저런 기도를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육체의 고통을 두려워하셔서 그런 기도를 하셨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육체의 고통을 넘어서는 훨씬 더 비절참절한 고통을 앞두셨기에 땀이 피가되도록 기도하시며 번민하셨을 것입니다.


사경회 첫날, 강사 목사님은 '용서'의 엄중한 의미를 재삼 강조하셨습니다.  '용서'의 유일한 담보물은 그리스도의 고난임에 틀림없는데, 우리에게 용서가 너무 익숙해지는 바람에 죄사함의 담보인, 그분의 고난에 관해서는 무감각해졌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범죄하면서, "하나님 아시죠? 이번에도 실수좀 했네요. as usual, 용서좀 부탁해요. 상황 종료!" 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건 아닌지, 말씀을 듣다가 한숨이 나왔습니다.


간음하다 붙들려온 여인을 바라보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을 것이니 다시는 죄짓지 말아다오'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용서는 그저 '좋은게 좋은거니까 앞으로 우리 잘해보자'하는 차원에서의 사함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구주의 '사면선언'은 그 여인 대신 당신이 결박당한채 돌을 맞는 자리를 전제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는 말은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기 위해 내가 죽는단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여인은 자신을 바라보며 죄를 사하시는 인자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자기 대신 십자가에 시신을 걸고 계신 그분을 미리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이 땅에 거하는, 온 인류의 죄를 혼자 오롯이 담당한다는 것...  당신을 보내신 성부로부터 단절되어야 한다는 것.... 그건 도무지 우리 이성과 지혜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게일 것입니다. 그저 상징으로서의 아사셀 양이 아니라, 인류의 죄의 총합을 그대로 짊어지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라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 지르신 것은 제로섬으로서의 십자가를 고스란히 보여주신것일 겁니다.  바로 그 때문에 겟세마네에서 아마 구주께서는 그 고독감과 절망감에 몸서리치신 것은 아닐까요?


손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익숙해져버린 일상의 '죄'들이 떠올랐고, 구주께 너무 죄송했습니다. 바로 내 죄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에서 위대한 구속사의 성취를 앞둔 자리에서 그리도 고통스러워하셨나봅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죄'와 '용서'... 그저 익숙한 단어로만 남지 않기를 기도했습니다. '용서'를 담보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구주의 그 어마어마한 고통의 무게를 정말 억만분의 일이나마 체감할 수 있게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새희 입원 바실래이아... 하나님 나라

귀여운 새희의 백혈병이 재발했다. 제자들 공동체에 발을 디딜 무렵 왠 예쁜 7살짜리 아이와 엄마가 정성스레 만든 사탕봉지를 나누어주길래 무언가 했었다. 완치 감사 선물이었다.

2년여가 흘렀고, 새희의 골수에는 악성세포가 다시 꽉 찼다. 놀라우리만큼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기며 아이의 투병을 돌보았던 현홍, 은 집사님 내외가 다시 똑같은, 아니 더 험한 투병의 길을 걸어야 하는 모습을 보며 말로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 길 다시 잘 밟아가길. 고통중에 얼굴을 드러내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 선명히 누리고 감사할 수 있기를 기도하다. 

지난주 출장때 소식을 듣고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새희. 새희를 치료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온 인류에게 부과된 고통의 총량이 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시대와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 중 누군가가 그 총량의 일부를 짊어지고 산다면, 그 누군가는 우리가 공유하는 고통의 총량을 그만큼 덜어주었다고. 즉 내가 평안하고 내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따라서 타인의 고통은 더 이상 타인의 것으로만 한정되지 않으며, 나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신 그 분의 단호한 말씀은 바로 그저 우리안에 있는 측은지심을 일깨우는 말은 아닐 것이다. 네 이웃의 고통 때문에 네가 평안을 누리며 숨쉬고 살고 있는 것을 잊지 말라는 준엄한 가르침이다. 그들의 고통이 내 질고가 되는 삶을 살아내라는 명령이다. 그 분은 그것을 몸소 가르치셨다. 새희와 이 땅의 수많은 아이들의 아픔은 내 자식의 아픔에 다름 아니다.

소피스트와 인간의 시대 세렌디피티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보았던 프로타고라스 류의 소피스트들은 자의적이고 사술적인 궤변을 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존재가 의미있었던 이유는 만물의 아르케고스 (Archegos)를 외부적 존재나 사물에서 찾지 않았던 데 있다. 즉 실재하는 이데아나 로고스 같은 형이상학에 인간이 복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만물의 근원이 신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고, 분리불가태의 원자도 아니고.. 인간 개개인이라는 입장은 이후 역사를 관통하면서 로고스 중심주의 (logos-centrism)과 대립된다. 중세 교회시대, 신을 대리하는 단테와 인간을 대리하는 에라스무스와의 싸움은 종교개혁에 의해 극적으로 화해한다. 즉 reformation의 영감이 humanist들로부터 발원하면서 '신을 위한 신'이 아닌 '인간을 위한 신'의 시대가 열린다. 극적이다.

이스라엘과 천연가스 한반도, 중동, 세계

유대인들은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존경하면서도 한가지 불만이 있다는 유머가 있다. 이왕이면 엑소더스 이후에 정착지를 정할 때, 야훼께 우겨서 지금의 사우디 지방으로 정착했다면 석유가 펑펑 나와서 최고 부자 이스라엘이 되었을 거라는 소소한 이야기꺼리가 그것이다.

내년부터 이스라엘 offshore에 따마르 가스전이 개발되어 생산이 본격화된다. 이스라엘이 탄화수소 에너지 자원의 순수 수출국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저 농담이 쑥 들어가게 생겼다. 그나저나 더 스스로 선민의식을 강화하게 되지나 않을지... 염려가 저으기 된다.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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